2024.04
[이모작프로젝트: 배움의 달]
editor 김기욱
지금 내게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하나는 선생님을 본받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하나는 선생님의 조경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날 여자친구와 지나가듯이 대화를 나눴다.
“어떤 사람이 조경가가 되어야 할까?”
선생님처럼 땅에 시를 쓰는 마음을 지니고, 흙과 나무 꽃을 애정하고, 한국의 경관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을 지닌, 그 정도의 수호적 정신을 타고난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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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내가 존경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새에 푹 빠져 언제나 새를 관찰하러 떠난다. 길을 걷다 잘린 플라타너스를 보며 나무에 생명을 되찾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 친구에게 물었다.
“넌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그 친구는 지금까지 수많은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깊이 없이 말로만, 글로만 생태를 떠드는 데 회의감을 가졌다고 한다. 잠시 업계를 떠나 진짜 생태를 전공하러 떠나겠다고 말했다.
나는 정영선 선생님과 그 친구를 동경한다.
‘맞아, 조경가란 바로 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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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이 드디어 대중에게 다가간다.
조경 대중화의 선봉은 역시나 정영선 선생님이다.
조경설계를 모르는 지인들에게 이제는 일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유퀴즈를 보라고 한다.
“얘들아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거야.”
그러나 사실 절반은 거짓말이다. 나의 조경설계는 유퀴즈에 나온 선생님의 설계와 같지만, 사뭇 다르다. 같지만 사뭇 다른건 설계에 임하는 태도의 차이이다.
선생님은 땅에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경에 임하셨다.
나는 발주처를 설득하고 이용자들에게 특별한 조경을 보여주자는 태도로 조경에 임했다.
선생님은 한국적 경관을 보전하고자 했다.
나는 주로 외국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경관을 제시하고자 했다.
선생님은 생태와 자연을 주연으로 설정하셨다.
나는 인간을 주연으로 설정하고 생태와 자연은 거들 뿐이었다.
나는 조경가로서 선생님과 그 친구의 업에 임하는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들을 동경한다.
그러나 선생님과 그 친구의 조경만이 궁극적 종착지로 마냥 흘러가는 업계 분위기를 부정한다.
나의 우려는 다양성의 종말이다. 맹목적인 자연성의 추구이다.
조경의 자연에 대한 수호적 정신은 조경가로서 장착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다. 부정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대의이자 사명감이다. 그러나 어떤 조경가에게는 수호적 정신은 한 낱의 꿈일 수 있으며, 보전보다는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조경의 본질을 자연성이 아닌 하나의 완성된 선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는 맹목적인 자연성 너머의 조경설계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만 한다.
조경설계의 가치는 정해져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순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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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과 부정
선생님이 일궈낸 빛나는 조경에 찬사를 보내며, 건강하게 부정하고 싶다.
차곡차곡 설계의 내공을 쌓아 나도 선생님의 나이가 됐을 때 나의 설계를 한 줄로 그어내고 싶다.
일평생의 철학이 담긴 땅에 쓰는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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