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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6) 놀이터를 디자인한다는 것에 대하여


2023.09.

[이모작프로젝트: 탐구의 달]

editor 김근우

 

노는 것, 노는 인간


인간은 태생적으로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들은 방학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직장인들은 어떻게든 주말/연휴에 자신의 휴가를 붙여서 길게 놀으려고 눈치싸움을 벌인다. 심지어 뽀통령은 노는게 제일 좋다고 노래 부르며 노는 것을 부추길 정도이니 이쯤되면 사람은 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일찍이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_Johan Huizinga 박사는 현생 인류를 ‘노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_Homo Ludens 라고 정의했다. 인류는 놀이라는 행위를 통해 경쟁과 협력을 도모하고 비로소 사회라는 문화로 발전시킴으로써 유대감을 키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종족이 됐다는 것이다.



 

정크놀이터, 모험놀이터


이렇게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지형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조성된 정크놀이터인 것 같다. 인류 역사상 최대 비극의 현장에서 탄생한 어린이 놀이터라니. 전쟁의 상흔속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어른들을 감화시켰던 아닌지 모르겠다.

정크놀이터는 이후에 점차 다른 나라에도 퍼지며 모험놀이터와 플레이파크라는 이름의 놀이터로 발전하게 된다. 모험놀이터와 플레이파크는 처음 등장한 뒤 많은 시간이 지난 현시대에도 굉장히 인기 있는 놀이터인데 놀라운 사실은 투박하고 거친 놀이시설을 가진 이 놀이터들의 주요 방문객들이 상류층의 부모와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이른바 3S_Swing/Slide/Seasaw 놀이터와는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험놀이터를 위해 부자들이 큰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돈을 지불해 가며 참여해야 하는 모험놀이터는 일반적인 놀이터보다(심지어 일반놀이터는 공짜인데!) 아이들의 창의력 발달과 모험심 발달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걸까? 모험놀이터는 일반적인 놀이터보다 더 “좋은” 놀이터일까?

스웨덴 스톡홀름의 정크놀이터


 

좋은 놀이터, 어포던스


자, 이쯤되니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최근 들어 어린이놀이터, 어린이공원 등의 프로젝트를 자주 수행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놀이터”를 만들 수 있을까? 강의에서 소개된 몇 가지 놀이터 디자인 요소(다양한 난이도의 제공, 놀이의 연속성, 루즈파트 놀이 등)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지원성과 행동유도성을 뜻하는 단어 어포던스_Affordance 이다. 어려운 개념이라 예를 든다면, 평범한 책상과 어린이를 떠올려보자. 어떤 어린이는 그 책상에서 평범하게 책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서 춤을 출 수도, 또 다른 아이는 책상 밑을 자신의 아지트로 쓸 수도 있다. 단순히 책상 하나만 놔뒀을 뿐인데 사용자에 따라 여러 가지 행동을 유도하는 “어포던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놀이터로 확장시켜 적용해본다면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놀이공간은 의도대로 사용될 수도, 예상 밖의 기상천외한 방식의 놀이형태를 탄생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의도와 상관없이 단 하나의 놀이터 디자인으로 다양한 놀이행태 결과값이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동유도성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도 꾸준히 어린이들의 행태를 관찰해야 하고,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 봐야 한다. 그리고 피드백 또한 중요한데 자신이 설계한 놀이공간을 자주 찾아가 이용 후 평가를 받고 보완해야 하는 점을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자주 거친다면 이런 저런 내공이 쌓여서 적절한 어포던스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포던스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놀이공간이라면 어린이들의 창의성 발달과 다양한 감각발달에 도움이 되고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직접 그린 놀이터


 

조경가, 좋은 놀이공간


조경설계를 하다보면 어린이놀이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빼먹기 일쑤다. 우리의 영역이라고 여기기보단 놀이시설물회사 고유의 영역이라고 지레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우리도 어린이놀이공간을 우리의 영역이라 여기고 편입시켜서 고민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시설물회사의 놀이터와 조경가의 놀이터는 다를 것이다. 조경가는 놀이“시설”보단 놀이“공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작의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 새롭고 좋은 놀이공간을 고민하고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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